지리산종주(1999년7월16일금요일~17일토요일)
일시:1999년 7월15일저녁~7월17일(산행은 1박2일)
종주경로: 성삼재-노고단-삼도봉-연하천대피소-벽소령대피소-세석대피소-장터목대피소-천 왕봉(1915m)-중봉-하봉-국골-추성리
참가자: 대구계성고63회 권호종,김영종,박기붕,장희석
지리산 서쪽의 최고봉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지나 여러 하산 길 중의 하나를 택하는 남한 단일산의 등반 코스중 가장 최장의 코스(52km)이며, 해발 1300m~1915m의 고봉준령(高捧駿嶺)을 넘어야하는 지리산 종주는 정신력, 체력이 어느 때 보다 필요한 등반이기에 지리산 천왕봉을 전에 칠선계곡으로 올라 백무동으로 같이 내려 온 적이 있는 나 포함 고교동기 네사람(대구계성고 권호종, 김영종, 장희석)과 등정을 시작했다.
전 날(15일, 목요일)저녁 달궁계곡에서 1박.
7월16일(금요일)
오전 5시20분 성삼재주차장
성삼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50분 정도 시멘트 포장길(그 좋은 산길을 포장한 지리산국립공단의 처사를 이해 할 수 없다고 투덜대면서)을 오르니 붉은 벽돌로 지은 노고산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식수충전 및 배낭 재점검 후 가파른 길을 10여분 노고단이다.
노고단 정상에 올라 이번 산행을 잘할 수 있도록 제를 지냈다.
(1507m의 노고단은 신라시대 때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매년 봄, 가을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이 있었던 곳이라는 뜻으로 ‘노고단’ 이라 부르게 되었다.)
노고단에서 산기슭을 내려서서 울창한 숲이 터널을 이룬 편한길을 가다보니 ‘돼지 평전’ 이란 팻말이 보인다.
(돼지평전은 마늘모양의 원추리 뿌리를 멧돼지들이 종종 파먹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지금도 멧돼지가 종종 놀다 간다고 한다.)
임걸령 삼거리를 지나 조금 가니 임걸령 샘터가 나온다. 여기서 어제 저녁 취침 전에 만든 주먹밥과 포장 김치로 아침식사를 마치니 아침 8시 정도가 되었다.
(林傑嶺은 조선 명종 때의 초적두목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됐는데 여기서 군사와 말을 길렀다고 전하며 이곳에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고 한다.)
능선길이 너무 편하여 한순간 능선 종주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이 들 정도의 길이 연속되다(지리산 주능선 등반구간 중 가장 편한 코스로 옛날 화랑들이 말을 달려 화살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는 과장된 전설이 있다.) 가파른 오르막길, 평지능선을 지나면 노루목(노루들이 지나 다니는 길목)이 나온다. 지리산 3대 주봉(천왕봉, 반야봉, 노고단)중의 하나인 반야봉(1733.5m)이 좌측에 있지만 해가 지기 전에 세석대피소까지 가야하기 때문에 발길을 계속했다. 30여분을 가다 보니 삼각화살모양의 쇠로된 이정표에 삼면이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라 표기된 삼도봉이 나타난다.
(삼도봉은 바위모양이 낫날 같다 하여 ‘낫날봉’이라 하던 것이 와전되어 일명 ‘날라리봉’ 이라고도 한다.)
지도상에는 삼도봉 토끼봉을 지나 두시간정도 산행하면 총각샘이 나온다기에 수통을 완전히 채우지 않았는데 아무리 가도 총각샘이 보이지 않는다. 기진맥진 한 몸으로 드디어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한시간이 정오 12시.
오전12시 연하천대피소
라면을 끓일려고 버너에 불을 붙여 물을 끓이는데 라면이 들어있는 배낭이 30분이 지나도 도착 않는다. 점심식사 후에 세제사용이 금지된지라 풀을 뜯어 코펠을 씻고 나니 권 교수는 코를 골면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다.
오후1시30분 벽소령 대피소에서 쉬기로 하고 다시 오후산행을 시작했다. 이정표에 오늘 숙소인 ‘세석대피소까지 13Km’ 로 표시된 것을 보니 벌써 다리에 힘이 빠진다.
30여분 산행 후 삼각고지에 도착(삼각고지에서 벽소령까지의 능선을 ‘피의능선’ 이라 부르며, 삼각고지의 남쪽계곡이 총사령관 이현상이 최후를 맞이했다는 ‘빗점골’ 이다)
형제바위(10m가 넘는 두개의 바위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형태의 바위인데 옛날 성불수도하던 두 형제가 산의 요정 지리산녀의 유혹을 경계 하여 지키려고 서로 등을 맞대고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버려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를 지나 오후3시 벽소령대피소(250명수용)에 도착.
오후3시 벽소령대피소
캔 맥주와 칠성사이다를 반반 섞어서 마시니 갈증이 확 풀린다. 다시 5Km를 한 시간에 주파하니 선비샘이 나오는데 얼마나 반가운지.
여기서 또 선비샘의 유래를 들었는데 옛날 선비샘 아래 마을에 살던 노인이 ‘죽어서라도 사람 대접을 받고 싶다’ 고 유언을 하여 아들들이 이 샘터위에 무덤을 만들어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마다 무덤에 고개를 숙여 결과적으로는 이 노인의 무덤에 절을 하도록 하였는데 지금은 무덤도 없는 쓸쓸한 전설로만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시원한 샘물과 비스켓으로 요기, 휴식 후 시계를 보니 4시30분이다.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든 코스(6Km)가 기다리는데 너무 늦다.
칠선봉(일곱 선녀가 노니는 모습의 암봉)의 기묘한 조화도 감상 못한 채 2시간여를 다리가 움직이는 대로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가는데 영신봉(1652m)밑의 철 사다리에 와서는 눈까풀도 움직일 힘이 없어 ‘세석대피소700m’ 란 이정표를 보고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그대로 주저앉아 남들이 보든 말든 눈을 붙인 후 다시 산행.
오후7시30분 세석산장
세석산장에 도착하니 7시30분이 지났고 뒤떨어진 두 사람이 도착 하려면 1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식사준비 및 숙소점검.
참치찌개를 얼큰히 끓여 저녁식사 후 내일 아침 및 점심 준비 후 취침(10시에 무조건 소등)
7월17일(토요일)
오전 5시30분 침구 정리 후 천왕봉으로(6Km)출발.
어제는 너무 피곤해 세석평전의 광활함을 감상할 여유가 없었는데 새벽의 세석고원은 꿈같은 화원이란 느낌을 준다(둘레가 12Km, 면적은 약 30만평정도)
세석평전을 뒤로하고 동으로 이어진 오르막길을 약 700m정도 오르니 촛대봉이다.
내가보기에는 사자가 엎드린 형상인데
한 시간정도 비탈길 및 능선길을 지나니 연하선경으로 유명한 연하봉에 이르는데 한 마디로 천국이다.
오전8시 장터목산장에 도착 수통에 물을 채우고 휴식을 취할 때, 서영호씨(회사 동료인데 본가가 함양에 있음)와 통화 후 신창원 검거소식(어제 금요일에 검거)에 놀람.
천왕봉에 오르는 길을 제석봉(1806m)을 지나가는데 1시간정도 가다보니 통천문(예로부터 부정한 사람은 오르지 못했다고 하는 하늘에 오르는 길목)에 다다르는데 이정표에는 고도가 1890m로 표시되어 있어 천왕봉(1915m)와는 25m 차이 밖에 안 난다고 하지만 내가보기엔 100m도 더 차이가 나는 것 같다.
오전9시40분 드디어 천왕봉(1915m)
성삼재에서 시작 37.9Km, 이제 하산길(중봉, 하봉, 국골, 추성으로 14Km)을 생각하면서 서쪽을 보니 노고단, 그리고 여자의 엉덩이가 위로 향한 모양의 반야봉, 그리고 지리산의 그 많은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식사를 포장 김치 하나로 때운 후 잠시 쉬면서 집에 전화를 하니 막내딸 은주가 “아빠 보고 싶어” 한다. 나도 보고 싶다.
오전11시 중봉(1875m)으로
오전12시20분 하봉 도착
국골 내리막길을 따라 해발 600m까지 내려오니(등산로가 생긴지 얼마돼지 않아 길이 험하고 하산길에 만난 등산객도 거의 없음)물 있는 계곡이 나온다.
오후5시 점심을 라면과 식은 밥으로 때우고
오후6시 출발
오후9시 추성리에 도착, 산행거리 52Km, 산행시간 30시간의 대장정 마감.
------ 박 기 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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