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내몽고여행(02년8월)

Pkb 2009. 8. 12. 17:40

 내몽고를 다녀와서 

2002년8월2일 인천항-천진 
 
휴가 때 가족을 두고 나 혼자만 떠나는데 대한 미안함, 풀리지 않는 회사 업무 등이 한달 전에 예약한 배표와 비행기표를 계속 지니고 있느냐 취소하느냐 갈등하다가 결단을 내렸다. 회사 동료와 둘이서 김포에서 만나 인천항으로 향했다. 
저녁7시 출항예정인 배가 9시가 되어서야 출항(중국 만만디의 예고),교과서에서 만 보았던 인천갑문을 처음 보았는데 신기하기만하다.
우리가 탄 배( 天仁号 :중국 배, 28000톤, 길이180m)는 크기는 한데 전에 권 교수와 중국 절강성(浙江성)여행 후 귀국길에 이용한 자옥련호 보다는 분위기가 영 어수선하다.보따리상인,배낭족,중국여행객,선박여행패키지로 떠나는 사람등 각양각색이다. 
6인1실에 우리와 함께 탄 대학생4명(15일 계획으로 북경과 계림을 여행하는데 이를 위해 두 달 동안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마련했단다)과 상견례후 매주잔 을 같이 하는데 너무 착하고 생각이건전하여 같은 방 을 쓰고 하루를 같이 보내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식당에서 한국 돈 4000원짜리 육개장으로 저녁을 때운 후 갑판,빠징고,갤러리등을 들락날락하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마음은 대학생들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첫날 피곤한 몸을 목욕탕에서 깨끗이 씻은 후 잠을 청한다. 
 
8월3일 서해-천진-베이징 
일출을 보려 일찍 일어났으나 구름 때문에 실패하고 낮에는 영화(경찰서를 털어라)와 갤 
러리 에서 의 독서로 시간을 보내다가 하선을 하는데 배가도착한후 두 시간 이나 걸렸다. 
같은 선실의 남자대학생4명과 또 다른 여대생2명 등 일행이 8명으로 늘어났다.(중국말을 
하나도 몰라 북경까지만 같이 가기로) 
천진 탕구 항 에서 북경으로 가는 버스는 1인당 50위엔(한국 돈 7500원) 으로 절대 깎아 주지를 않는다. 차에 우리만 앉아 있는데 단체손님이 오자 우리보다 내리라 한다. 안 내리려고 승강이 하니 시동을 꺼버리고 차가 고장 났다고 한다. 결국 내려 다른 차를 타서 자리를 완전히 채워서 출발하는데 더운 날씨에 선풍기도 없고 무거운 배낭은 가슴에 안고..... 
새벽1시경 북경에 도착 북경역 앞으로 가려는데 같이 탔던 조선족 1명이 조양구(자기가 사는 동네)에 호텔 값이 싸고 시설이 좋다고 그리로 가라고 한다. 택시타고 30분을 가서 소개해준 호텔을 들어가는데 한국 돈으로 10만원이 넘는다. 우리야 피곤하고해서 그냥 투숙하고 싶지만 학생들은 20위엔(한국 돈3000원)짜리 구하는데 턱도 없다. 다시 북경역 앞으로 택시를 타고 오는데 비가 억수같이 온다. 비가 너무 와서 앞이 안 보이는데 호텔 몇 군데를 가니 모두 메이요우(없다)다. 북경 전람관 옆 4성급 호텔에서 친절한 여자 복무원을 만나 소개받은 호텔로 갔다. 중국돈 1200위엔(한국 돈 18만원)에 방 3개를 예약 후 학생들에게 우리가 반부담 할테니 여기서 자자고 하고 호텔에 들어갔다. 학생 중 일부는 경비 때문에 북경 역 에서 노숙하자고 하는 학생도 있지만 결국 새벽 4시경 호텔로 투숙했다. 정말 확실한 시행착오에 엄청난 악몽이었다. 
 
8월 4일(일요일) 북경
중국 도착 첫날부터 이러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만 앞서 잠 못 이루다 9시경에 일어났다. 학생들과 헤어진 후 북경 역 에서 내몽고 표를 예약하기로 하니 대단하다.(엄청난 인파. 도대체 다 먹고 사는지) 
내 몽고가 너무 넓어(우리나라의 15배 정도) 이동에 문제가 있을 것 같아 결국 중국 국제 여행사에 패키지 의뢰기로 하고 북경역 앞 국제 여행사 사무실에 갔다. 오늘 바로 (일요일)가는 내 몽고 여행 일정은 없는데 꼭 가려면 1인당 중국돈 1500위엔(한국 돈 225,000원)을 내란다. 마침 사람 좋아 보이는 남녀학생이 내일 내 몽고로 출발하려고 해 같이 합류키로 했다. 집이 절강성의 수도 항주(미인의 고장) 여서 인지 참 예쁜 중국 여대생과 한국 남학생은 둘이 사귀는 중이란다. 850위엔(1인당) 에 예약하고 천안문광장을 지나 전문(前問) 으로 갔다. 만두집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간단히 시켰는데 우리를 외국인으로 알아봤던 여주인이 주문을 적게 받았다고 여직원을 몰아세운 후 본인이 직접 주문 받으러 온다. 전문 관광 중 여자 소매치기가 경찰 두 명 에게 수갑을 뒤로 채워가지고 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강인하면서 깔끔한 인상에 나를 보는 눈매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한순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천단공원 지나 체육관 옆 숙소(3성급호텔)를 잡고 왕푸징 으로 나왔다가 전치덕 베이징카오야 왕푸징점에서 식사를 했는데 비싸다.(300위엔) 왕푸징 관광후 버스타고 숙소로 돌아오는데 버스비는 1위엔이다 . 날씨가 너무 더워(38도) 하루종일 땀을 흘렸다. 여름에 북경은 오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8월 5일 (월요일) 북경->내 몽고 열차 
중국은 정말 감을 못 잡겠다. 허리띠를 하나 사려니 (최신형) 한국에서는 4만원 정도하는 물건이 왕푸징 백화점에서는 1만 5천원 에서는 전문(前問)에서는 한국 돈으로 1500원, 이러니 우리나라가 가격 경쟁이 되겠는가. 마침 수영복이 바꿀 때가 되어 왕푸징 백화점에서 수영복을 하나 샀는데 질도 좋고 가격도 싸다.(7500원) 
시내 관광버스를 타고 동물원에 가서 팬더곰을 보고 시내 구경을 한 후 전문 입구의 맥도날드에 들어갔다. 자리를 못 잡고 있는 중국 여학생이 있길래 불러서 자리를 같이 앉자고 했다. 운남성 에서 북경관광 왔다는 대학생들인데 너무 앳되보여 고등학생이냐니까 대학생이란다. 한국어를 인사말을 가르쳐 달라기에 가르쳐주고 사진 같이 찍고.... 
저녁 10시 北京西 역에서 내몽고로 출발했다. 시속120Km로 12시간을 달려가는데 열차표를 부탁할 때 침대하단을 부탁했는데 표를 받고 보니 中段이라 불편하다. 열차에 오른 후 옆자리 중국사람(산서(성에 산다) 과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는데 월드컵 기간동안의 반한 감정에 대해 미안하다고 한다. 나도 섭섭했는데 오늘 이후로 잊어버리겠다 고 약속했다. 추워서 잠이 깼는데 열차에서 바라본 차창은 한쪽은 넓은 초원이고 한쪽은 강렬한 태양을 볼 수 있었다. 
 
8월 6일 열차침대칸 ->내몽고 주오즈산->초원 
아침 10시경 주오즈산에 열차가 도착했는데 야, 이것은 완전히 영화에서만 보던 팔레스타인(집이 부서진 것)처럼 폐허다. 전형적인 무뚝뚝한 우전기사가 베스타 비슷한 차를 몰고 기다린다. 차안에는 먼저 중국여자와 남자애 둘이 타고 있는데 비포장 길이라 가다가 심한 멀미로 토하는 바람에 모두 내려 잠시 휴식을 취하며 몽고를 음미한다. 가지고 갔던 소화제를 억지로 먹이니 중국여자가 친근감을 보인다. 몇 시간 을 갔을까. 초원이다. 날씨가 너무 추워 몽고 방한복을 빌려 입고 빠오(몽고 유목민텐트)를 배정받고 주는 양젖을 마시는데 마실만하다. 날씨가 너무 추워 (10도) 빠오 바깥을 나가는 것을 꺼리다가 초원으로 말을 타러갔다. 2시간을 탔는데 가다가 말이 풀을 뜯고 싶으면 쉬고 이 있으면 쉬면서 빌고 호수에서 쉬고 하면서 2시간 여를 가는데 양떼와 더불어 정말 환상적이다. 그저께 비가 오다 보니 초원에 물이 고여 호수가 형성되었다. 마셔도 되냐니까 말과 양은 마셔도 되고 사람은 안 된단다. 끝없는 초원의 지평선(태어나서 지평선은 처음 보는 것 같다.)을 보면서 마음을 비우러 온 내가 이 순간만은 정말 마음을 비울 수 있을 것! ?!
객? 저녁에 몽고씨름. 말 경주. 내몽고 환영행사를 보다가 빠오에서 같은 방에 자는 사람들과 맥주 한잔 후 잠을 청했는데 방한복을 입고 잤지만 발과 얼굴이 추워 밤새 잠을 설쳤다. 자다가 새벽에 별을 보니 하늘 전체가 별이다. 지리산 법계사에서 많은 별을 본 후 이렇게 많은 별은 처음이다. 

8월 7일 초원->호화호특 야간열차로 북경. 
새벽에 일출을 보라고 깨운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순간적으로 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모두 박수를 친다. 정말 황홀하다. 아침 식사 후 호화호특 시로 오는데 원래는 3시간 거리인데 도로에 고장 난 차가 너무 많아 시간이 지연됐다. 온 도로에 고장 난 차가 있고 추월해서 지나가는 차들 끼리 싸우는데 절대 양보가 없다. 
호화호특 시에서 오탑사를 관광하고 식사 후 일행들과 헤어졌다. 이들은 사막으로 가고 아쉽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어 귀국 날짜 때문에 돌아 가기로 했다. 헤어지고 열차시간(밤10시) 까지 7시간이 남아 시간 때우기로 내몽고 박물관에 갔는데 정말 볼만하다. 알타이어 민족인 내몽고족(소수민족) 의 생활습관이 우리조상과 너무나 유사한 것을 보았다. 생전에 모택동과 주은래가 가장 관심을 가진 자치구 인데 지금은 한족이 80~90%이고 내몽고족(소수민족)은 10%를 조금 넘는다나. 
아무튼 몽고에 공룡의 서식지가 그리 많은 것을 처음 알았고 공룡의 화석, 뼈 (실물크기로 제일 긴 것은 60m)를 보고나서 처음 박물관을 들어올때와 나갈때의 감정이 영 다르다.
재래시장과 모피제품 판매 상점을 갔다. 목도리와 여자 셔츠들을 내가 봐도 너무 좋은데 사려다가 내년에 집사람과 같이 와서 사기로 했다. 
역 앞 광장에서 쉬다가 식당에서 모처럼 배부르게 식사하고 열차시간이 되어 대합실로 갔다. 대합실에서 7월27일 중국에 와서 내몽고를 거쳐 내일 연길(백두산)로 가는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면서 한달간 중국 여행한다는데 세상 참 재미있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면서 온갖 이야기를 다하다가 열차에 올랐다. 너무 피곤해서 인지 양치를 한 후 침대칸에 올랐는데 금방 잠이 들었다. 

8월 8일 열차->북경역->공항->집으로 
침대 열차가 삼단으로 되어있는데 나는 하단에 중간에는 중국인 남자 상단에도 중국인 남자 마주보는 칸에는 하단에 같이 간 회사동료 중간에는 중국 여자대학생 상단에는 젊은 중국 아낙이 탔는데 같은 침대에 남자들이 옷을 벗고 자는 것(중간의 남자는 팬티만 입고 맨몸으로 잔다) 에 별로 개의치 않으니 정말 이상한 나라다. 
아침에 일어나 열차안에서 빠다링창청(만리장성)을 보는데 산을 넘어 끝없이 이어지는 장성이 정말 경이롭다. 하단의 젊은 아낙과 한 컷 . 사진을 보내주기로 하고 열차에서 내렸다. 

오후1시 비행기로 김해로 돌아오기로 되어있었는데 김해의 기상악화로 내일까지 비행기가 결항 이란다. 한국 가는 비행기는 국적과 관계없이 웨이팅을 걸어 놓고 기다리다가 저녁 8시 중국민항기 비스니스석을 구해 가까스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니 밤12시이다. 아뭏튼 늦게라도 돌아왔으니 다행이다. 재미있었지만 힘든 여행이었다. 
 
8월9일 박기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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