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절강성지역 여행 후
올해 여름부터 꼭 한번 하고 싶었던 중국 紹興(샤오싱),杭州(항조우)등의 절강성 지역을 구정 연휴를 맞아 여행했다. 같이 간 친우 권 호종 교수의 영향으로 풍치관광 보다는 중국 역사를 공부하는 여행을 하여 실제로 여행이 끝날 때 쯤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후에라도 잊지 않도록 한자 적어본다.
2001년 1月 20日 대구-부산-상해
설렌 마음에 일찍 깨어 대구역으로 향하는데 억수같은 눈이 온다. 오전 10시30분 김해발 상해 착 비행기의 Economy좌석으로 편하게 여행시작. 상해에 도착하여 마중나온 권 교수의 제자 이병진씨(상해거주한국기업근무)로부터 金粤漁村(금월어촌)이란 해산물전문식당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예원, 성황묘등을 추운날씨에 관광하고 상해임시정부로 간다. 초라한 건물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 마저 드는데 권교수가 2층에 전시된 윤봉길 의사의 시를 읽어주는데 힘이 실린 시의 뜻을 알 뜻 말뜻 하다. 어째든 시를 모르는 나도 뭔가 가슴에 와 닿는게 있어 한자 적어 본다.
二十七日
新公園에서 踏靑(답청)하며
萋萋(처처)한 芳草여
明年에 春色이 이르거든
王孫으로 더부러 같이오게
靑靑한 芳草여
明年에 春色이 이르거든
高麗江山에도 다녀가오
多情한 芳草여
今年 四月 二十 九日에
放砲一聲으로 맹세하오
윤 봉길
상해에서 오후 6시 30분 普陀山(보타산-세계 불교 4대 성지 중 한 곳)으로 가는 장장 12시간의 배에 몸을 싣고 오늘을 마무리 할까 한다.
21日 普陀山(보타산)
밤새 뒤척이다(추워서) 5시에 기상. 배 안에서 샤워 후 하선 (조산). 항구 근교의 호텔에서 아침을 하는데 음식도 괜찮고 값도 싸다. 1人 15元(한국돈 2000원) .식후 걸어서 버스정류장에 가려다 姑娘(꾸냥)이 운전하는 택시가 마침 바로 앞에 서길래 이 차로 보타산 가는 선착장으로....................
보타산 도착 후 숙소를 정한 후 (佛山빙관 -무협영화에 나올만한 호텔로 방도 많고 구불구 불 한데다 투숙객이 없어 으스스 하다.)
보타산 관광에 들어 갔다. 중도에 기어코 안내를 자청하는 꾸낭을 만나서 海鮮園의 식당을 소개 받았는데 “돔”을 회로 쳐줄 수 있다 해서 시켰더니 “돔”을 갈기갈기 찢어 놓아 도저히 먹을 수 없어 다시 탕으로 부탁했는데 계산 할때는 1근(斤) 남짓 이란 표현 때문에 바가지(주문시에는 1근 정도(85元)라 해서 주문 했는데 계산 할 때에는 1.98근으로 계산하여 승강이를 하다 결국 달라는 대로 계산) 계속해서 버스 요금 바가지. 군데군데 입장료징수 (보타산 입구의 입장료 1인당 60元외에 곳곳 마다 입장료 징수)가 보타산의 웅장한 풍광을 잡쳐놓았다. 중국에는 화장실도 돈을받는데 화장실사용료가 보타산에서는 1인당0.5元이다. 권교수 와 둘이서 화장실을 사용후 슬적 1인요금만 주고나와 이번에는 손해보지 않았다고 히득히득.
중국 여행시 먼저 안내를 자청하는 사람을 피하라... 오늘의 교훈
보타산 스님들도 春節을 쉬러 가는데 우리도 닝보우(寧波)로
보타산은 바가지만 아니면 꼭 한번 더 오고 싶을 만큼 경관이 수려하고 웅장하다. 독실한 불교신도인 우리 장모님과 한 번 왔으면..........................!
22日 보타산에서 닝보우(寧波)로
5시 50분에 일어나니 창 밖에는 비가 온다.
샤오지에 (小姐)가 온수에 목욕하라기에 30분을 물을 틀어도 안나와 다시 부르니 보온병에 물을 4병 주면서 목욕하라 한다. 普陀山大酒店(보타산대주점. 5성급)에서 조식 후 쾌속선을 타고 닝보우(寧波)로 ...쾌속선을 타고 연근해로 나와도 계속 물색깔은 탁하다. 중국에서 회를 안먹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선 후 차를 갈아타고 닝보우(寧波)로 가는데 사람들의 고속도로 횡단이 여사다. 아이들도 고속도로에서 논다. 옆자리의 남자는 닝보우(寧波) 해운 회사에 근무한다는데 발음이 굉장히 깨끗하여 칭찬해 주니 좋아한다.
영파에 도착 화랑빈관 (3성급)에 숙박비를 문의 하니 140元까지 해 주겠다 하나 어제까지 목욕 한 번 못하고 춥게 잔 탓이라 5성급인 金港大酒店에 방값 300元으로 계약 후 호텔 4층 식당에 식사하러 가니 뜻하지 않게 한국식당이 있어 김치찌개로 오랜만에 입안이 활활 타도록 먹은 것처럼 먹었다.
천봉탑 관람 후 고려영사관(옛날)자리를 찾아가려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 번지하나 달랑 들고 찾으려니 힘드는데 마침 옆에 지나가는 女學生(丁小姐)에게 물으니 그런 건물은 본 적 없지만 그 방향으로 가니 같이 가잔다. 너무 남루한 건물이라 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가나 영파의 한국 기업인들과 순천시의 독지가 7명이 새 건물을 단장해 놓았는데 전문가들이 아니라 石物 번역을 너무 엉망으로 해 놓아 이제 중국어에 조금 눈뜨기 시작한 내가 봐도 틀린 글자가 많다. 권 교수 가 하나하나 지적해 주니 전시관 전체를 다시 고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맑디 맑은 딩 리쥔 학생의 안내로 천일각(天一閣)을 관람 했는데 권교수의 설명과 더불어 오늘의 압권. 아니 감동적이다. 무조건 寧波 방문시 천일각은 꼭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천일각 : 중국에 현존하는 최초의 민간 도서관. 박물관으로 1561년 병부우시랑 범흠(范欽)
이 지었던 장서 누락으로 넓디 넓은 정원이 너무 웅장하며 아름답고 미로 가 많아 出口를 못찾아 한참 헤메었다.
저녁 식사 후 酒bar에서 한잔(가격도 저렴. 분위기도 괜찮다.) 후 Disco광장을 찾았는데 우리의 대학 시절을 보는 것 같은데 사회 보는 친구가 클론을 흉내내 머리를 박박 깍은 것이 인상적이다.
*영파(닝보우) :심청전에서 심청을 공양미삼백석에 사러왔던 상인들이 왔던 해안도시
23日 영파(닝보우) → 시코우 → 소흥(샤오싱)
시코우에 있는 장개석 父子의 생가 2층집 풍호방을 방문. 안내양이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보고 광동성에서 왔냐고 묻는다. (워낙 방언이 많고 넓은 대륙이라 보니)
박정희 기념관도 방문안한 내가 장개석 기념관을 방문하니 기분이 묘한데 야비한 중국인의 장삿속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풍호방 입장료(20元)으로 들어가면 2층계단 올라갈 때 2층 관람료를 다시 10元 더 내란다. ) 대만에서 온 관광객들은 어쩔 수 없이 다시 추가 지불 하지만 아마 기분은 더러울 것이다. 풍호방에서 취재나온 영파 방송국 아나운서와 권교수의 인터뷰가 있었는데 유창한 중국어로 말하는 중 한국인이라 밝히자 깜짝 놀란다.
(중국 여행 중 방송국과의 첫 번째 인터뷰)
시코우에서 영파로 돌아와 허무두와 사현고리 (四賢故里)의 위야오로 기차로 이동했다.
春節(춘지에.구정)전날 이라서 인지 기차 속 풍경은 카드놀이. 호박씨까먹기 등으로 정신없고 산만한데 창 밖에는 끝도 없는 들판이 펼쳐져 있다. 하차 후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위야오에서 제일 큰 호텔로 택시를 탔다. (여자 운전수) 기본요금 6元인데 10元을 주니 거스럼 돈을 주지 않는다. 손을 내미니 2元만 줘서 왜 그러냐니까 성질을 내면서 春節(춘지에) 때는 다 그렇다나..밥 맛 없는 여자다. 식사 후 사현(四賢) 을 기리는 龍泉山(용천산)에 올랐다가 시간이 늦어 허무도 관광은 결국 포기하고 3시 30분 소興(소흥)으로 열차행...........
■허무두■7000년 전의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
사현고리 (四賢故里)■양명학을 완성한 철학자 왕양명. 실사구시를 제창했던 주순 수. 황종희. 한나라의 은사였던 엄광 4사람을 기리는 뜻이 숨어있다.
소흥으로 가면서 소흥에 대해 정리해 본다.
소흥은 춘추시대 월나라왕 구천이 오나라를 치기 위해 섶에 누워 쓸개를 햝았다는 곳(와신상담. 臥薪嘗膽)이고 중국 8대 名酒의 하나 소흥주의 산지이며 우리가 갈 왕희지의 난정(蘭亭)과 심원(沈園)외에도 추근(여류사상가) 루쉰의 생가. 왕양명의 묘가 있으며 주은래의 고향이다. 또한 동양의 베니스로 불릴만큼 물의 도시이다.
열차 속에서도 계속 비 구경만 한다. 허무도 신사 유적지에 못 간 탓에 허탈해서 인지 권교수도 곯아 떨어져 있다. 저녁에 용산 반점에 숙소를 정하는데 春節(춘지에) 에는 깎아 주는게 없단다.
호텔 식당에 가니 春節(춘지에) 을 쉬러온 투숙객 때문에 자리가 없어 방으로 식사 배달해 주겠단다. 대충 볶음밥 섞어서 100元에 맟추어 배달을 부탁했는데 닭발한접시가 나와 다른 요리와 교환했다. 잠시 틈을 내어 집에 전화하니 서울 동생도 구정을 쇠러 집에 와 있다. 내만 빼놓고 . 나 때문에 구정기간에 중국여행을 해서 더불어 구정을 가족과 못 보내는 권교수에게 또 한 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24日 소흥(소興)의 아침---春節
창문을 여니 안개가 자욱하다.
아침 9시 대구 집에 아버님(아버지■본인의 父親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하는데)께 전화로 새배 드리고 비가 오는 가운데 왕희지 사당 묵화정이 있고 왕희지가 난정집서(蘭亭集書)를 만든 蘭亭으로 향했다. 비오는 난정은 물안개와 더불어 또 다른 느낌인데 권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포석정이 난정을 모방 했다고 한다.
버스를 갈아타고 거암으로........
비싼 입장료(38元) 만큼이나 대단한 곳이다. 거암풍경구를 전부 감상하려면 하루가 걸리겠지만 또 다음 갈곳을 위해 자리를 뜨려는데 호수 한 복판에서 하는 월극이 인상적이다.
후 일 소흥 여행시 꼭 다시 오리라 생각하면서 아쉽지만 갈 때 탓던 66번 버스로 소흥시내로...
시내내의 관광버스를 타고 호산 으로......
오후 들어 비는 대충 그쳤으나 날씨는 춥고 신발이 젖어 손발이 시럽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저승(천국인지지옥인지)가는 기분인데 거암과 마찬가지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이 창조한 예술의 극치를 보는 것 같다.
돌아 오는 107번 버스 속에서 옆자리의 아이를 보니 은주가 보고 싶다. 뭘하나 주고 싶어 주머니를 뒤지니까 우리돈 100원짜리가 나와서 주니 애기엄마가 고맙다 한다.
■중국의 사찰■권교수의 표현대로 라면 땡중이 있는 곳
호텔 식당에서 보니 샤오지에(小姐)의 스타킹 속에 내복이 삐쳐 나온다. 난방을 못하니 추워서인가?
여행 중 식당에서 내가 가장 많이 쓴 말 (샤오지에 게이워 이연 : 소금 좀 주세요!..)
커피를 시키니 프림이 없다. 프림의 중국어를 몰라서 블랙으로 마셨다.
25日 소흥에서의 둘째 날
아침 일찍먹고 부산(付山)공원으로 향했다.
오월동주. 월왕구천의 와신 상담을 생각하면서 부산공원 하산 길에 월왕(越王)묘 앞에서 소흥 방송국 기자와 인터뷰 (중국 여행 중 두 번째 인터뷰인데 복장도다르고 사진기를 매고 있으니까 유별나던 모양이다. 예쁜 중국 여기자와 사진 한 컷..!)
추근 여사의 고가와 루신 기념관. 주은래 기념관을 점심도 굶고 관람.
KFC에서 햄버거로 요기 후 6시 23분 열차로 미인과 소동파가 생각나는 항조우로 가기 위해 역으로 갔다. 역에서 기다리던 중 열 살 짜리 중국아이에게서 귀여운 모습과는 달리 중국 도착 처음부터 나던 역겨운 썩은 두부 튀긴 냄새가 코를 찌른다. 항조우의 권교수 제자집에 초대 받고 융숭한 대접을 받은 덕분에 다음날 늦잠을 잤다.
26日 항조우 (杭州)
上有天堂 下有蘇杭■하늘에는 극락이 있고 땅에는 소주(蘇州)와 항주(杭州)가 있다
미녀 서시(西施)에 비유되어 아침에도 좋고, 저녁에도 좋고, 비오는 날에도 또한 좋다고 한 항주에 오니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
절세의 미인 서시(西施)로 비유되는 西湖를 뒤로하고 악묘(岳墓)를 관광했다. 금나라의 침략에 맞서 용감하게 싸운 민족적 영웅 악비(岳飛) 의 묘(墓) 앞 철책안에 양손을 뒤로 묶이고 무릎이 꿇린 4개의 철로 만든 동상은 악비(岳飛)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간신의 모습인데 중국 관광객들이 뱉은 침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다.
남송의 서울인 항조우는 서호(西湖)와 용정차(龍井茶)로 유명한데 역으로 가는 도중에 택시 운전 기사(여자) 말로는 진짜 용정차는 없다고 한다.
시간에 쫓겨 서호십경(西湖十景)은 뭐가 뭔지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고 아뭏튼 아름답고 웅장하다고만 생각하고 바쁘게 다녔다.
둘레가 15km가 된다고 하니 자전거를 한 대 빌려서 구석구석 다녔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만 서호와 관련된 문인들 중 나도 들은 바 있는 인물들에 대해 권교수의 설명을 들으면서 서호를 가로질러서 갔다.
임포(林逋) ■ 매화를 아내삼고 학으로 자식 삼았던 시인.
백제(白提) ■ 서호(西湖)의 東西를 가로 지르는 방죽. 시인 백낙천이 만들었다.
소제(蘇提) ■ 서호(西湖)의 南北으로 길게 뻣은 방재. 시인 소동파가 재임 중 만들었다.
아름다운 서호(西湖) 를 아쉽게도 작별하고 상해로 가는 열차를 탔다. 샤오지에(小姐) 가 혼자 앉아 있는 자리를 내게 양보한 권교수 덕분에 상해 도착 때까지 계속 小姐와 대화를 나누었다. 발음도 시원찮은 내 질문에 일일이 대꾸하느라고 많이 귀찮았을텐데 싫은 내색이 없다. 상해 병원에 근무하는데(간호사는 아니고) 春節휴가를 마치고 상해로 돌아가는 중이라나.... 상해에서 호텔을 잡으려는데 찬바람이 뼈골을 쑤신다. 난징로의 서점에서 권교수의 책 쇼핑을 기다리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아름다운 가수 등려군(鄧麗君)의 테이프 두 개를 샀다. 너무 늦어 저녁을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로 때우고 문을 닫으려는 백화점에서 집사람에게 줄 다이어트 차를 샀다.
27日 오전 10시 ~28日 오후 6시 (32時間의 여객선안의 풍경)
10시에 부두를 출발해서 와이탄. 동방명주탑을 배경으로 갑판에서 사진을 찍었다. 황포강을 따라 항해를 하는데 3~4시간을 왔는데도 황포강을 벗어나지를 못한다. 황토색 강이 끝도 없다. 승객들 거의 대부분이 한국으로 여행가는 중국 관광객이라 한국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내가 한국인인걸 알고 부터는 곁을 떠나지 않는다.
난징에서 한국으로 여행가는 아가씨들. 북한까지 갔다 왔다는 소주(蘇州) 방송국 기자 부부 등 여러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여행객 중 혼자서 3살짜리 애기와 단 둘이서 배낭여행(대책없는여행)하는 새댁에게서는 소흥에서 본 추근여사(남편을 두고 일본유학을 간 여류 사상가)를 느꼈다면 과장된 걸까..
저녁에 배멀미로 구토를 하는 사람이 서서히 늘어난다. 잠이 안와 가라오케에 가니 중국인들 정말 노래를 못 부른다. 나훈아의 사랑. 서유석의 길가에 앉아서 를 한 곡 부른 후 중국인들과 「등려군」의 「티앤미미」,「달은 내 마음을 대변한다」를 같이 불렀다.
28日 6시 선상에서 일출을 보러 일어났으나 날씨가 안 좋아 일출은 보지 못해 안타깝다. 제주도를 서쪽으로 지나 부산으로 향하는데 휴대폰이 터진다. 집에 전화를 했다. 배 안에서 슬로트 머신으로 150元을 잃었다. 관광객들은 한국에 대한 기대감으로 생기 발랄한데 소주의 방송국 기자는 오늘도 부인(가수 출신으로 미인이다. )을 비디오로 촬영하기에 여념이 없다.
제주도 근해(80km)라 그런지 상해 앞바다(양쯔강의 영향으로 굉장히 탁하다)와 달리 맑은 물 색깔이 참좋다. 중국에서 권교수가 일품요리라고 쏘가리찜을 계속 시키는데 못 먹었던 이유가 아마 중국의 물 때문이 아닐까?....
중국인들은 월급을 한달에 1500원(20만원) 정도 받는 다는데 배안에서 여행 씀씀이가 대단하다. 틈만 나면 마작 (식구끼리도 돈을 걸고)이고 ,카드놀이 인데 나 보고도 같이 하자는 사람이 많다. 대우 조선이 눈앞에 보이고 조금 있으니 가덕도가 보인다. 근 10일간의 여행을 마무리 할 때다....
2001년1월28일 박 기 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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